2009년 12월 12일 토요일

사람들은 왜 아이폰에 열광하는가?

애플의 아이폰이 출시된 이후 10만여대나 팔렸다고 한다.

이유가 무엇일까?

왜 사람들은 아이폰에 열광하는 것일까?

그리고 최고의 스펙을 자랑하며 전지전능을 외치는 T옴니아2는 왜 고전하는 것일까?

 

3가지의 이유를 들어 설명해 볼 수 있겠다.

최근 디지털제품들의 화두는 컨버젼스, 단순화, 확장성 이 세가지로 요약할 수 있겠다.

 

첫번째 컨버젼스다. 컨버젼스는 무엇을 뜻하는가? 융합이다.

즉, 다앙한 기능과 성능을 하나의 제품에 담는 것을 말한다.

핸드폰, MP3, e-mail, 디지털카메라와 같은 소형제품들을 하나로 해결하고 싶은 것이다.

소비자들은 여러가지 제품들을 가지고 다니는 것이 번거로운 것이다.

그런데 이 컨버젼스에 최적화된 제품이 나왔다. 그 녀석이 바로 아이폰이다.

물론 국내에서 제조된 핸드폰이나 스마트폰도 어느 정도는 이러한 기능들을 수행한다.

그러나 불편하다. MP3는 DRM정책으로 인해 일일이 변환해야 하고 음질이나 플레이면에서

불편하기 그지없다. 카메라는 화소는 점점 올라가고 있지만 찍어놓은 사진을 활용하기가 쉽지 않다.

이동 중에 인터넷을 이용해 이메일이나 간단한 검색을 하려해도 너무나 비싼 요금에 엄두가 나지 않는다.

대부분의 핸드폰은 wifi가 지원되지 않는다. 수출품에는 있지만 내수용에는 빠져있다.

아이폰은 이 모든 기능을 탁월하게 수행한다. 태생이 아이팟이기에 mp3로서의 성능은 어느정도

검증되어 있다. 또, 와이파이를 지원하기에 와이파이망을 이용해 저렴하게 혹은 무료로

인터넷을 이용할 수 있다. 또, 장착되어있는 디카를 이용해 찍은 사진은 블로그나 트위터, 이메일에

수시로 올릴 수 있다. 그 활용도가 매우 높다. 아이폰만  있으면 컴퓨터를 쓸 수 없는 외부에서도

내가 원하는 일을 탁월하게 수행할 수 있는 것이다.

생각해보자. 인터넷이 안되는 컴퓨터는 그 성능이 아무리 좋아도 벽돌이나 마찬가지 인 것처럼

핸드폰도 그렇지 않을까? 성능이 좋으면 뭐하나 인터넷 이용이 불편하거나 비싸다면 꽝인 것을…

 

두번째는 단순화이다.

사람들은 많은 기능을 원한다.

그런데 아이러니 하게도 쉽게 쓰기를 원한다.

어려우면 그것은 더 이상 그 가치를 못한다.

전지전능의 옴니아가 왜 고전했는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메뉴얼을 보고 공부를 해야 쓸 수가 있다.

왜 T옴니아가 햅틱UI를 채용했는가?

단순하게 이용하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그런데도 아이폰이 더 단순하다.

더 쉽다. 누구나 쉽게 사용할 수 있다.

이것은 기술의 문제이다. 즉, 컨버전스는 누구나 할 수 있다(물론 이것도 어느 정도 수준의 기술은 필요하다).

다양한 기능의 제품을 하나로 모을 수는 있으나

이것을 단순화하여 쉽게 사용하도록 하는 문제는 다른 것이다.

여기에는 당연하지만 고도의 기술이 필요하고 소비자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가능하다.

국내 제조사들은 소비자중심이라기보다는 제조자와 통신사중심이다.

왜, 시장이 그렇게 형성되어 있으니까?

그러나 아이폰은 달랐다. 소비자가 진정 원하는 것 그것을 만들어 낸 것이다.

진정한 의미의 마케팅의 승리가 아닌가 생각한다.

아이폰의 성공은 다양한 기능의 제품을 만들어 내고 이것을 누구나 쓰기 쉽게 만들어 냈다는 점에 있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확장성이다.

아이폰은 앱스토어를 통해 그 기능이 무한대로 확장되고 있다.

이제는 게임기로서 닌텐도의 강력한 경쟁자가 되었다고 하니 알만한 일이 아닌가?

때로는 뚜벅이용 네비게이션으로 이용할 수 있다. 전화기라기 보다는 컴퓨터에 가깝다.

사람들이 원하는 기능들이 앱스토어를 통해 수시로 만들어 지고 거래된다.

쉽게 설치할 수 있고 지울 수 있다.

혁명이라고 할 수 도 있겠다. 터치 몇 번으로 설치와 삭제가 가능하다는 점 말이다.

윈도무모바일폰은 결코 쉽지 않다. 하지만 아이폰은 정말 쉽다.

이 확장성은 단지 소프트웨어적이 면에서 그치지 않는다. 하드웨어적인 측면에서

각종 케이스와 전용스피커, 차량용제품등 다양하게 확장되고 있다.

이 점에서 아이폰은 탁월하다.

 

국내 어떤 제품이 이 제품보다 탁월할 수 있을까?

아마도 당분간은 찾기 힘들 것 같다.

무엇보다 아이폰의 단순한 이용은 하루아침에 나오는 기술이 아니다.

 

다양한 기능의 융합과 쉽게 이용가능 한 UI 무한한 확장성 그리고 모바일인터넷에

최적화된 성능 이것이 아이폰의 성공요인이 아닌가 생각한다.

 

국내제품이 아이폰을 이기는 길은 간단하다.

첫째 기술을 혁신하고

둘째 소비자를 정확히 이해하는 것

이것 말고 또 무엇이 있을까?

언론플레이로는 아이폰을 이길 수 없다.

2009년 11월 24일 화요일

공모전

제8회 사계절 문학상

 

주최
:
사계절출판사

주관
:
사계절출판사

후원/협찬
:
-

접수기간
:
09.05.01 ~ 09.12.31

홈페이지
:
http://www.sakyejul.co.kr

주최국
한국
개최횟수
-

응모분야
문학/시나리오

주최기관
신문/방송/언론
응모대상
제한없음

시상규모
3천만원~1천만원
특전

공모요강

모집 부문
13∼18세 청소년이 읽을 수 있는 장편소설로, 미발표 창작물이어야 합니다.

원고 분량
200자 원고지 700매 안팎

시상 내역
대상:1편 상금 2,000만원(선인세)

응모 자격
기성 및 신인 작가

응모 마감
2009년 12월 31일까지

응모 방법
원고는 반드시 A4용지로 출력해야 하며, 우편으로만 접수합니다. 디스켓, 이메일 등은 받지 않습니다.
응모시 '제8회 사계절 문학상 응모작'임을 명시하시고, 연락처(전화번호, 주소)를 꼭 남겨 주십시오. 응모된 원고는 반환하지 않습니다.

접  수  처
(우)413-756 경기도 파주시 교하읍 문발리 파주출판도시 513-3
(주)사계절출판사 청소년문학팀 사계절문학상 공모 담당자

심        사
예심과 본심으로 나누어, (주)사계절출판사가 위촉한 심사위원의 심사를 거칩니다
심사 경위는 (주)사계절출판사 홈페이지에 밝힐 예정입니다.

발        표
2010년 3월 -입상자에게는 개별 통지하며, (주)사계절출판사 홈페이지에 게재합니다.
저작권 등 수상작은 (주)사계절출판사에서 발간하는 ‘사계절 1318문고’로 출간합니다.
대상 수상 작품의 저작권은 저자에게 있습니다.
출판권은 5년간 (주)사계절출판사가 소유합니다.

문  의  처
자세한 내용은 청소년팀으로 연락하시기 바랍니다.
전화 (031)955-8568 청소년문학팀 사계절문학상 공모 담당자

접수방법
우편

담당자명
사계절문학상 공모 담당자

담당자 연락처
-

담당자 이메일
-

담당자 주소
[우편접수주소] 413-756 경기도 파주시 교하읍 문발리 파주출판도시 513-3 (주)사계절출판사 청소년문학팀 사계절문학상 공모 담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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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1월 7일 토요일

Canon mp 145 - FixYa

캐논 mp145 E1,4 해결방법

  • Turn off the printer
  • Hold the Resume Button (red circle in the triangle), add a printer (click “Power”) an indicator light green.
  • Hold the Power Button, release the Resume Button.
  • Not releasing the Power Button, double click “Resume” and release Both Buttons.
  • Click “Resume” for Four times
  • Once you click “Power”, to confirm the selected action (reset counter absorber). To disable the printer “Power” button to click again.
  • Canon mp 145 - FixYa

    서울경제 : '장동건·고소영' 2세 태어난다면 어떤 모습?

     

    클릭하시면 원본 이미지를 보실수 있습니다

     

    장동건과 고소영의 2세 모습^^

     

    아마도 상당히 이국적인 외모가 되리라 생각된다.

     

    낳아봐야 알겠지만~^^

    2009년 11월 3일 화요일

    성공한 CEO 사례

    장평순 교원그룹 회장 "상품이 B급이면 내 인격도 B급이 된다"

    [인물탐구] 배추장사로 시작해 빨간펜까지 '영업의 달인'

    장평순 교원그룹 회장(58)은 지난 7월께 톡톡히 유명세를 치렀다. 그룹 계열사들이 비상장사인 까닭에 회사도,장 회장 본인도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상황에서 국내 최고 부자 중 한 명으로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것.한 경제주간지가 교육과 생활가전을 양대 축으로 하는 교원그룹의 자산가치를 환산해본 결과 장 회장의 재산(1조1384억원) 순위는 8위였다.
    "저도 몰랐는데 친구가 전화해줘서 알았어요. 평생 주식이나 재산에는 신경쓰지 않고 살았는데…."
    장 회장의 말씨는 무척 덤덤했다. 돈을 모은 비결을 묻자 "잘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죽어라고 일했다. 물론 운도 따랐지만…"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배추장사로 모은 종자돈 10억원

    1951년 충남 당진에서 태어난 장 회장의 유년시절은 극빈과 결핍이라는 두 단어가 지배했다. 부모가 고향을 떠나 인천에서 행상 등 날품팔이를 했던 탓에 다섯 살 때까지 외가에 맡겨져 자랐다. 영양실조에 걸려 병원에서 링거도 여러 번 맞았다. 어릴 적 가난은 청년시절까지 끈질기게 따라다녔다. 지방대를 졸업한 뒤 행정고시를 준비하면서 '인생반전'을 노렸지만,뜻대로 되지 않았다. 반듯한 회사에 취업도 쉽지 않았다.
    장사를 하는 수밖에 없었다. 청년 장평순은 배추장사를 시작했다. 1980년도 초였다. 가게를 얻을 돈이 없어 4t트럭에 배추 무 등을 싣고 다니며 주택가나 아파트 단지의 공터에 내다놓고 팔았다.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는 말처럼 장 회장은 철저하게 '품질'을 따졌다. 전국의 산지를 다 둘러보고 가장 좋은 배추들만 골라서 실었다. 한번은 한 차 가득 실은 배추가 겉은 멀쩡한데 속이 썩은 것을 발견하고 손님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전액 환불을 해줬다. 그 배추들은 모두 쓰레기장으로 직행했다. 아무리 떠돌이 장사꾼이라지만 소문이 안 날 수가 없었다. 장 회장은 그렇게 거짓말처럼 10억원을 모았다.
    1985년 현재 교원의 모태가 되는 학습지 사업에 뛰어들 수 있었던 것도 이때 마련한 종자돈 덕분이었다. 서울 인사동에 작은 사무실을 빌려 직원 3명과 함께 밤을 새워 학습지를 만들었다. 큰 돈 들지 않고,매달 현금 장사를 할 수 있겠다는 판단에 시작한 사업은 과외금지 조치 등으로 학습지 '붐'이 일면서 나날이 뻗어나갔다. 2001년 시장이 정점에 달했을 때 교원의 학습지 회원은 50만명에 달했다. 장 회장은 구몬학습 · 빨간펜을 창간하며 교원을 학습지 시장의 강자로 키웠고,2002년에는 교원L&C를 설립해 정수기 · 비데 등 생활가전으로 사업영역을 확장했다.
    #"최고가 아니면 안 된다"
    사업 초창기부터 영업맨으로 잔뼈가 굵은 장 회장이 항상 강조하는 것은 열정이다. "영업 잘하는 사람의 얼굴은 열기가 느껴지고,일에 대한 집중도가 남다르다"는 게 지론.장 회장은 "창업 후 한마디로 일에 미쳐 있었다"고 회상했다. "귀가시간이 매일 새벽 2~3시였어요. 애들을 낳을 때 처음 보고,두 번째는 기어다닐 때 봤어요. "
    장 회장은 "상품이 B급이면 고객에 대한 나의 인격도 B급이 된다"고 강조한다. 전집류 시장에서 스테디셀러로 자리 잡은 '주니어 라이브러리'는 제작기간 7년간 100억원을 투입해 탄생했다. 장 회장은 "1등 못할 상품은 아예 만들지 말라"며 책의 글귀,색상 하나까지 어린이들의 정서에 맞는 작품을 만드느라 공을 들였다.
    교원은 전국 각지에 5성호텔급 연수원 시설을 갖추고 있다. 연수원 시설을 이용해본 직원들은 교원의 최고 상품으로 주저없이 '연수원'을 꼽는다. 장 회장은 "그룹 규모에 걸맞지 않게 일개 연수원에 많은 돈을 쏟아붓는다"는 시각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전국에 4개 연수원을 짓고 호텔을 포함한 5개 휴양시설까지 확보했다. 이들 시설은 3만여명에 달하는 교원 영업조직을 재교육하는 한편 조직원들의 로열티를 높여주는 역할을 한다.
    외부에서 보면 교원은 '2등'에 안주하는 회사로 비쳐지기 십상이다. 후발주자로 학습지 시장에 뛰어들어 대표기업으로 성장했지만,정수기 등의 분야에선 선두기업인 웅진코웨이와 격차가 큰 탓이다. 교원의 내부 유보금이 5000억원 가까이 되지만 대형 인수 · 합병(M&A) 시장에 명함을 들이민 적이 없다는 점도 교원의 수세적 이미지를 만드는 데 일조했다.
    하지만 장 회장은 "사업을 시작한 이후 항상 모든 것을 걸었다"며 "교원이 2등에 만족한다는 평가는 아직 이르다"고 강조한다.
    현재 오프라인 학습지 시장은 사설 학원 득세와 인터넷 세대의 저변 확대 등으로 침체기를 맞고 있다. 최근 교원이 온라인 학원을 인수하는 등 공격경영의 고삐를 죄고 있는 것도 그래서다. 전국 3만여명의 방문판매 · 서비스조직,5000억여원에 달하는 내부 유보자금 등 공격경영을 위한 실탄은 충분히 확보한 상태다. 장 회장은 "정수기 등 생활가전에서 웅진이 압도적으로 1위를 달리고 있지만 곧 우리와 경쟁하게 될 것"이라고 자신한다.
    #"배일호 모창은 내가 최고"
    장 회장은'싸움 바둑'을 즐긴다. 한번 빠져들면 끝장을 보는 스타일이어서 바둑 입문 1년 만에 1급 수준에 올랐다. 지금은 아마 5단 실력으로 주변에서 마땅한 적수를 찾기 힘들다. 낚시 사이클 등 그 밖의 취미도 여러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몇 년 전 주변 권유로 시작했던 골프는 적성에 맞지 않아 그만뒀다. 뭔가를 시작해서 중도에 포기한 것은 골프가 처음이다. 10년 전 낚시에 입문했을 때는 운전기사를 '낚시광'으로 직접 뽑고,숙식이 가능한 밴을 구입해 전국 낚시터를 섭렵했을 정도다. 그래서 골프에 빠져들지 않은 장 회장을 놓고 지인들은 모두 고개를 갸우뚱한다. 이에 대해 장 회장은 "들인 시간에 비해 별로 재미도 없고,꼭 만나야 할 사람은 가끔씩 술로 회포를 푼다"고 말했다.
    바둑이나 낚시는 그다지 활동적인 취미가 아니다. 장 회장 스스로도 내성적이라고 생각한다. 기자가 장 회장을 처음 만났을 때의 이미지도 그랬다. 과묵하고 선이 굵은 스타일이어서 말을 걸기가 쉽지 않아 보였다.
    그래서 "그룹을 총괄해야 하는 최고경영자(CEO)로서 애로사항이 많지 않으냐"고 에둘러서 질문을 던져봤다. 직원들과의 스킨십 문제를 물어본 것이다. 장 회장은 "성격과 취미까지 경영활동에 끌고 들어오지는 않는다"며 "남들 하는 만큼은 하는 편"이라고 말했다. 직원들과 격의없이 술자리도 자주 갖고,흥에 겨우면 노래도 한가락씩 뽑곤 한다.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을 짓자 장 회장은 "가수 배일호씨 노래는 줄줄이 꿰고 있고,목소리까지 똑같이 부를 수 있다"며 "'돌아가는 삼각지'라면 대한민국 CEO 중 내가 최고"라고 말했다.
    장 회장은 교원그룹의 조직이 커나가면서 역사책에서 훌륭한 리더를 찾아 반면교사로 삼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직언을 일삼던 위증이란 신하를 내치지 않고 끝까지 중용했던 한(漢)고조를 리더의 전형으로 꼽았다.
    장 회장은 "최고의 리더는 열심히 일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 줄 아는 사람"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려면 부하직원의 실수를 눈감아줄 줄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손성태 기자 mrhand@hankyung.com

    인터넷 비지니스성공사례

    [서울신문] ‘기념주화 모아 500만달러’ 27세 청년의 대박

     

    인터넷에선 반짝이는 아이디어로 떼돈을 벌 수 있다.구글이나 이베이가 본보기다.그런데 비결의 틈새가 무언지는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는다.

    미 해병대를 2003년 제대한 27세 청년 제프리 모린의 기발한 사업은 땡전 한푼 없는 이라도 연간 500만달러(약 60억원) 매출을 올리는 기업을 차릴 기회가 아직 있다는 것을 상기시킨다고 워싱턴 포스트가 2일(현지시간) 전했다.

    작은 아이디어가 대박으로 연결

    그가 이베이를 처음 접한 것은 7년 전 홍해에서 근무하던 때였다.어느 부대에 복무했거나 훈련에 참여한 것을 기념하는 주화가 이베이에서 거래되는 것을 눈여겨 봤다.이베이 고객들은 주화 하나에 15달러를 주고 샀는데 모린은 해병대 기지에서 5달러면 살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노스캐롤라이나주의 기지로 복귀했을 때 개당 4달러50센트를 주고 30개를 산 뒤 하나를 촬영해 이베이에 올렸다.주화는 사흘 만에 11달러50센트에 팔렸다.

    모린은 점심시간에 막사로 달려가 모아뒀던 주화를 에어쿠션으로 싸서 봉투에 담아 우체국에서 부쳤다.봉투와 우표 값으로 1달러5센트씩 지출했다.장사에 눈을 뜬 그에게 남은 과제는 어떻게 수요를 창출할 것인가였다.모린은 “(이베이 사업의) 핵심은 많은 사람들 사이에 경매 전쟁을 유발하느냐다.”며 “하루에 서너번 주화를 올리는 것보다 딱 한번 올리는 게 낫다는 것을 깨달았다.한개뿐이라면 11달러에 팔 수 있었다.더 많이 올려봤자 가격만 내려가 7달러도 받고 8달러도 받았다.”고 말했다.

    그는 어머니로부터 500달러를 빌려 주화를 긁어모은 뒤 이윤이 나면 주화를 사들이는 데 재투자해 한달에 300~500달러씩 벌었다.6개월 뒤 모린은 오하이오주에 사는 한 여성으로부터 제대로 사업으로 키워보자는 제의를 받았다.해병대에 아들을 보낸 가족들에게 팔 수 있는 기념주화를 제작하면 어떻겠느냐는 것이었다.

    제안을 받아들인 그는 동료 병사에게 50달러를 주고 동전 디자인을 만들어 달라고 했다.그 다음 웹서핑을 통해 주문용 주화를 제작하는 회사를 찾아냈다.주조비로 300달러를 내면 개당 3달러50센트에 주화를 제작할 수 있었다.100개를 주문한 뒤 운송비로 750달러를 부담했다.

    ‘해병대 부모연합’과 ‘해병대 엄마 온라인’ 같은 사이트에 가입한 뒤 곧 나올 주화 도안을 공개했다.그러자 3시간 만에 100개가 모두 팔렸다.개당 10달러에 팔면 이윤이 6달러50센트였다.곧바로 업자에게 500개를 더 주문했는데 사흘 만에 다 팔렸다.모두 2500달러를 손에 쥐었다.

    비용은 떨어뜨리고 수요는 늘리고

    그는 “돈 좀 만질 수 있겠구나 깨닫기 시작했지요.”라고 말했다.주화 사업은 막사를 벗어나기 시작했다.어머니를 끌어들여 개당 75센트에 봉투에 주소를 적고 부치는 일을 맡겼다.문제는 개당 3달러95센트의 운송료였는데 이문을 잠식했던 것.오하이오 여성이 대안을 제시했다.아버지나 형제자매 또는 해병대와 어떻게든 엮이는 이들로 고객을 늘리면 되지 않겠느냐는 것이었다.더불어 취사병이나 저격병,보병 자원이든 늘릴 수 있어 잠재적인 고객이 수백만명으로 불어났다.

    더 싼 비용에 제작할 수 있는 제조업자를 수소문했더니 중국 회사는 개당 90센트에 제작할 수 있다고 했다.스물둘에 해병대를 제대하던 2003년,한 달에 1만 5000달러의 주화를 판매했다.

    책을 한 권 사서 구글에서 ‘주문형 주화’와 ‘군대 주화’ 같은 검색어로 광고 효과를 높이는 방법을 공부했다.주문이 쏟아져 고객담당을 채용할 정도가 됐다.며칠 뒤 거대 유통업체인 타겟에서 전화가 걸려와 타겟이 후원하는 영화 ‘스타 워즈’ 기념주화 5만개 계약을 맺었다.모린은 제조비용을 후려쳐 개당 60센트까지 떨어뜨린 뒤 개당 1달러35센트에 팔아넘겼다.이 계약으로 3만 5000달러를 챙겼다.

    그리고 지난 5년 동안 모린은 주화 사업을 결혼식과 스포츠팀,스타벅스나 델타항공,택배운수업체 UPS 같은 기업들로 넓혀나갔다.온라인을 강화하기 위해 웹 디자이너를 고용했고 회사 이름을 ‘해병대 주화’에서 ‘어떤 것이든 주화’로 바꿨다.주화뿐만아니라 트로피,기념핀과 기념끈으로 넓혔다.

    회사는 올해만 500만달러 매출을 올리는 다섯 개 회사를 거느리게 됐다.제품 비용으로 250만달러를 쓰고 16명의 인건비로 50만달러,4000평방피트에 이르는 본사 임대료로 월 7000달러를 지출했다.구글에 내는 돈은 연간 100만달러였다.

    연간 순익은 100만달러로 추산된다.한 경쟁업자로부터 400만달러를 줄테니 회사를 팔라는 요청도 받았다.“진지한 기업인”이라고 말한 그는 “아이디어 하나로 새로운 기업을 세워 큰 돈을 벌었다.”고 덧붙였다.

    인터넷서울신문 맹수열기자 guns@seoul.co.kr